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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에 중요한 것은 "사운드", 소리를 위한 소리 없는 싸움 시작

따뜻한우체부 2022. 2. 20. 21:14

전기차는 소음이 발생하지 않는다. 배터리 냉각을 비롯해 각종 시스템 제어를 위한 소리를 만들어 내긴 하지만 내연기관 자동차와 같은 엔진 혹은 배기음 자체가 없기 때문에 매우 정숙한 주행 환경을 만들어준다.

 

너무 조용해서 문제도 발생한다. 저속으로 주행 중일 때 보행자가 전기차의 접근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는 보행자 안전과 연결되기 때문에 각국에서 전기차 관련 안전규제를 내놓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km/h 보다 낮은 속도로 주행할 때 최대 75dB 미만의 경고음을 밖에서 들려줘야 한다. 미국은 시속 30km 미만까지 내도록 하고 있다. 유럽은 20km/h까지 경고음을 만들도록 하고 있지만 경고음이 56dB까지로 국내보다 소폭 낮게 설정됐다.

이러한 ‘외부 경고음(AVAS, Acoustic Vehicle Alert System)’은 어디까지나 안전을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제조사들은 주변 소리에 섞이지 않는 독특한 음색을 만들어 보행자가 차량이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전기차를 위한 새로운 사운드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내연기관 엔진에서 전달했던 배기 사운드의 감동을 전기차에서도 전달하기 위함이다.

 

현재까지 내연기관 자동차의 배기 사운드는 몇몇 제조사들만의 특권처럼 여겨졌다. 이중 마세라티의 배기 사운드는 현재까지 타사와 전혀 다른 독보적인 존재감을 전달해오고 있다. AMG의 8기통 엔진에서 만들어지는 중저음의 배기 사운드도 많은 팬층을 거느리고 있다. 포르쉐의 배기 사운드는 ‘포르쉐 노트’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렉서스 LFA의 배기 사운드는 ‘천사의 포효’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하다. 이외에 람보르기니의 V12 사운드, 맥라렌의 V8 사운드, GM과 포드의 스몰블록 V8 사운드 등도 특유의 색이 분명하다.

 

하지만 전기차 시대가 다가오면서 일부 제조사들의 ‘전유물’이었던 배기 사운드는 곧 들을 수 없게 됐다. 이에 다양한 자동차 제조사들이 전기차를 위한 사운드 개발에 열중하고 있다. 자사만의 색을 입힌 전기차 사운드를 만들고 특화해 제2의 마세라티, 제2의 포르쉐 노트 자리를 꿰차기 위함이다.

발 빠르게 움직인 것은 제네시스다. GV60에는 액티브 사운드 디자인(e-ASD)이 탑재됐는데, 지금까지 전기차에서 듣지 못한 사운드를 전달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소리는 실내는 물론 외부에서도 독특하게 표현된다.

 

내연기관 엔진 배기 사운드와 유사한 감각을 전달하기 위해 속도를 비롯해 모터 토크, 가속페달 조작량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가장 알맞은 사운드를 탑승자에게 전달한다. 기존에 듣지 못했던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 전자음악 분야에서 사용하는 그래뉼라 합성법을 도입한 것이 특징. 그래뉼라 합성법은 소리를 매우 작은 단위로 분해하고 이를 조합해 새로운 소리를 만드는 음향 합성기술을 뜻한다. 이를 통해 SF 영화에서 접할 수 있는 다채로운 사운드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현대차 측의 설명이다. 

BMW는 영화 라이언킹, 다크나이트, 인터스텔라 등을 작곡한 ‘영화음악의 거장’ 한스 짐머(Hans Florian Zimmer)와 손잡았다. 이를 통해 BMW 아이코닉 사운드 일렉트릭(Iconic Sound Electric)을 만들었다.

 

BMW의 플래그십 전기차 iX와 스포츠 전기 쿠페 i4를 시작으로 다양한 모델에 적용된 아이코닉 사운드 일렉트릭은 시동 버튼을 누르는 순간부터 탑승자에게 전달된다. 특수효과 음향효과를 연상시키는 소리를 시작으로 주행모드에 따라 다양한 사운드로 변경된다. 특히 스포츠 모드 설정 후 빠른 달리기를 할 경우 전기차 특유의 고주파 음이 아닌 중저음의 묵직하고 강렬한 사운드가 전달되는 것이 특징이다.

메르세데스-벤츠도 자체적으로 개발한 전기차 사운드를 EQS부터 탑재했다. 실버 웨이브(Silver Waves)와 비비드 플럭스(Vivid Flux) 사운드를 선택할 수 있으며, 일상 주행 시 실버 웨이브 사운드가 우선적으로 설정된다. 이때 EQS는 주행 중 최소한의 사운드를 만들어내 정숙하고 고급스러운 주행감을 느낄 수 있다.

 

반대로 비비드 프럭스 모드가 선택되면 매우 독특한 사운드가 만들어진다.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1에서 포드(Pod) 레이싱 때 사운드와 매우 유사한 사운드를 EQS에서 즐길 수 있다. 토마스 쿠퍼(Dr. Thomas Kuppers) 메르세데스-벤츠 사운드 디자인 책임에 따르면 향후 AMG의 V8 사운드도 전기차에서 구현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언급했다.

아우디도 e-트론 GT를 통해 자체적으로 만든 사운드를 탑재했다. 전기차만의 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바람이 플라스틱 파이프를 통과하는 소리, 무선전동 드라이버 소리, 헬리콥터 소리 등 무려 32가지 소리를 합성했다. 

 

보행자 경고음부터 범상치 않다. 고성능 엔진의 만들어내는 배기음과 유사한 사운드로 일반적인 전기차가 아니라는 것을 표현한다. 주행 중 실내에 전달되는 사운드도 전기차의 특징을 유지하지만 고성능 내연기관의 감각도 함께 전달하도록 했다.

 

내연기관 시절 배기 사운드에 특화됐던 제조사도 과거의 영광을 이어 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포르쉐 타이칸은 존재감 자체나 사운드도 독특하다. 르망 24시간 레이스 챔피언카 919 하이브리드가 트랙 주행을 할 때 만들었던 소리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 특징이다. 실내는 물론 실외에서도 특유의 사운드가 들릴 수 있도록 했다. 전기차이기 때문에 조용해야 한다는 편견을 깬 것. 특히 타이칸 터보 S에는 일렉트릭 스포트 사운드(Electric Sport Sound) 기능이 기본 적용돼 전기차가 아니라 포르쉐를 운전 중이라는 감각을 전달하는데 집중했다. 미래지향적인 우주선 사운드에 내연기관의 부밍음, 전기의 흐름을 연상시키는 사운드 등 복합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마세라티는 내연기관의 사운드보다 전기차의 사운드가 더 매력적일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이미 티저 영상을 통해 특유의 전기차 사운드를 공개했을 정도로 자신에 찬 모습. 타사와 달리 매우 날이 선 음색을 만들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윌리엄 페퍼(William Peffer) 마세라티 아메리카 CEO는 “우리에게 솔루션이 있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마세라티에 거는 전기차 사운드에 대한 기대를 충족할 수 있음을 자신했다.

 

타사와 달리 마세라티의 전기차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사운드는 파악할 수 없다. 마세라티는 신형 그란투리스모를 시작으로 슈퍼카 MC20의 전기차 버전까지 다양한 전기차를 내놓을 예정이다. 마세라티에서는 전기 모터(Electric Motor)가 아닌 전기 엔진(Electric Engine)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단순한 전기차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전기차 시장이 성장할수록 가상 사운드 시장도 커지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퍼시스턴스 마켓 리서치(Persistence Market Research)에 따르면 가상 배기 사운드 시장 규모는 2017년 약 340억 달러(약 38조 1004억 원)에서 오는 2025년 2140만 달러(약 239조 8084억 원)까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오토뷰 | 김선웅 기자 (startmotor@autovie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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